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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기]배우도, 기자도 울었다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

이경헌 기자 | 입력 : 2019/02/16 [18:15]

 

올해로 3.1 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100년이 되었다. 물론 1919년 3월 1일, 만세운동으로 곧바로 독립이 되진 않았으나 전국적으로 곳곳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 결국 1945년 우리는 해방을 맞았다.

 

1919년 기미년 3월 1일 만세운동에 참여한 각계 대표 33인도 유명하지만, 우리가 삼일절이면 가장 먼저 떠 올리는 인물을 꼽으라면 아마도 ‘유관순’ 열사를 떠올리는 이가 열에 열일 것이다.

 

1919년 3.1 만세운동 당시 그녀의 나이는 고작 18살. 지금도 살아있었다면 올해로 118살이겠지만, 유관순은 노래 가사를 통해 우리에게 영원히 언니요, 누나로 기억되고 있다.

 

그런 유관순 열사이지만, 정작 그동안 그녀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를 찾아보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동안 학교에서 교과서를 통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정작 미디어 홍수의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 그녀를 다룬 영상물을 찾기 힘들다는 점이 아이러니 하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유관순 누나’가 세상을 떠난 지 99년이 지난 2019년, 2편의 영화가 곧 선보인다.

 

하나는 이달 27일 개봉하는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이고, 또 다른 하나는 다음 달 개봉을 확정지은 다큐멘터리 영화 <1919 유관순>이다.

 

두 작품 모두 제목에 유관순을 내세웠다는 공통점 외에도, 유관순 뿐 아니라 서대문 형무소 여자 8호실에 갇힌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다뤘다는 점도 닮았다.

 

그 중에서도 지난 15일 기자시사회를 통해 먼저 선보인 <항거: 유관순 이야기>는 1919년 3.1 만세운동에 초점을 두지 않고, 그 후 서대문 형무소에 갇힌 1920년의 유관순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특히 감옥에 갇힌 유관순(극중 고아성)이 같은 방에 갇힌 권애라(극중 김예은), 김연화(극중 김새벽) 등과 함께 3.1 만세운동 1주년을 맞아 감옥 안에서 다시 한 번 만세운동을 기획하는 내용이 눈길을 끈다.

 

이화학당(지금의 이화여고) 학생이자 기독교인 까닭에 자유와 평등한 세상을 꿈꾸던 상당히 깨어있던 그녀는 같은 ‘여자 8호실’에 갇힌 이들을 모두 동등하게 대했다.

 

다방에서 커피나 타던 여성이라고 무시하지 않고, 천석꾼 아니면 술 1잔 얻어먹기도 힘들다는 수원에서 잘 나가던 기생이라고 자신 보다 낮게 보지 않고 사람 대 사람으로 대했다.

 

자신의 형량이 5년에서 3년으로 줄어들었지만, 자신은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한 탓에 일본말을 쓰면, 간수(看守)들에게 잘 협조하면 형량을 더 감해주겠다는 회유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런 그녀는 3.1 만세운동 1주년을 기념해 다시 한 번 옥중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기획한다.

 

영화 속 유관순은 정확한 날짜를 알기 위해 일부러 자청해 노역(勞役)을 하면서 옥사(獄舍) 밖으로 나온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연스레 3월 1일이 며칠이나 남았는지 알아낸 후, 드디어 당일 오후 2시 자신의 방인 ‘여자 8호실’에서 만세를 선창(先唱) 한다.

 

같이 방에 갇혀 있던 다른 여성 독립운동가들도 함께 만세를 따라 부르고, 이 소리를 듣고 다른 방에 있던 죄수들도 만세를 따라 외쳤다.

 

3천 명이나 되는 죄수들이 만세를 외치니 딱히 주동자 1명을 색출하기도 힘들고, 그렇다고 모조리 죽일 수도 없는 노릇.

 

더욱이 서대문 형무소에서 울려 퍼져 나오는 만세 소리를 듣고, 바깥에 있는 사람들도 하나 둘씩 만세를 외친다.

 

역사적 사실에 따르면, 이때 서대문 형무소 근처로 사람들이 몰린 탓에 전차가 마비되고 기마부대가 출동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맨 처음 만세를 외친 것이 유관순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일본은 그녀를 무자비하게 고문한다.

 

 

이 고문 과정에 참여한 사람이 바로 황국신민(皇國臣民)을 꿈꾸는 조선인 출신 헌병 보조원 니시다(정춘영)이다.

 

정춘영(극중 류경수)은 같은 조선인임에도 불구하고,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독립운동가를 이해하지 못하는 철저한 뼈 속까지 일본의 백성이 되고 싶어 하던 인물이다.

 

영화에서 유관순은 벽관(관처럼 생긴 나무 상자 안에 다리를 결박당한 채 서서 갇히는 고문), 공중 매달리기(두 손 만으로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리는 고문), 손톱 뽑기 등 고문을 당하는데 영화 비중에 비해 고문 장면이 적은데 대해 감독은 기존에 알려진 고문 중 다른 고문들은 1920년 이후에 개발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고, 너무 가학적으로 보일까 싶어 가장 큰 고문 3가지만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사실 아무리 영화라지만, 극중 유관순이 고문을 당하는 장면을 보면서 객석에 있던 기자들이 여기저기서 훌쩍 훌쩍 거리며 울음을 참지 못했다.

 

이 정도의 장면만으로도 관객들이 울음을 참지 못하는데, 실제로는 더한 고문을 당한 유관순(고문으로 그녀는 자궁과 방광이 파열되어 석방 이틀 전 감옥에서 죽었다)이 당했을 고초를 생각하면 왜 우리가 3.1 만세운동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지 쉽게 이해가 된다.

 

1년에 수 백 편의 영화를 보는 탓에 좀처럼 영화를 보면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영화 기자들이 울 정도여서였을까, 극중에서 유관순 역을 맡은 고아성은 시사회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 내내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출옥 2일 전 옥사(獄死)한 그녀의 시신을 몰래 태우려다 이화학당 측의 강한 요구로 시신을 돌려받아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치했으나, 일본이 이곳을 군용기지로 개발하면서 결국 그녀의 시신은 유실(遺失) 되었다.

 

1949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유관순을 고문한 정춘영의 죄를 만천하에 공개하자, 이승만 정권은 아예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해체해 정춘영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극중에서 정춘영(일본이름 니시다) 역을 맡은 류경수는 촬영 전 류관순의 생가를 찾아 절을 한 후, 계속해서 죄송한 마음을 갖고 촬영에 임했다고.

 

감옥에 갇힌 이들의 감정을 잘 표현하기 위해 칼라 보다는 흑백을 주로 사용한 것이 이 영화의 특징이다.

 

감옥에서의 기록을 토대로 철저히 사실에 의해 제작된 <항거: 유관순 이야기>를 통해 고아성의 말처럼 죽음 보다 삶으로 기억되는 유관순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디컬쳐 이경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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