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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5월의 기념일과 청소년의 존재
기사입력  2020/05/24 [19:57]   이경헌 기자

▲ 사진=영화 <도희야> 스틸컷  

 

5월, 청소년의 달을 보면 특이한 기념일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근로자의 날(1일)을 필두로 어린이날(5), 어버이날(8), 동학농민혁명 기념일(11), 스승의 날(15), 5·18민주화운동기념일(18), 성년의 날(셋째 월요일), 부부의 날(21), 바다의 날(31) 등의 기념일과 함께 발명의 날(19), 세계인의 날(20), 방재의 날(25) 등 누구를 주체로 하는 날일지도 모를 기념일도 다수 지정되어 있다. 

 

이중 법정 공휴일은 비록 어린이날에 국한되어 있지만 어버이날, 스승의 날 등과 같이 존경의 대상으로 감사를 드리는 날에서부터 각 대상별 자신의 업무나 동료의식을 높이는 등 서로 다른 의미를 내포하며 입지를 높이는 노력은 각종 기념일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 가운데 청소년들은 5월을 맞이하여 어린이날을 즐긴 후, 고마움을 부모에게 전하는 8일 어버이날, 군사부일체의 뜻을 이어받아 스승을 존경하는 15일 스승의 날을 기념하다 5월 셋째 주 월요일에 바로 성년의 날을 맞이해 본다. 

 

그리고 21일 부부의 날을 맞이하게 되면 청소년에 가장 중요한 달에 자신의 입지를 새롭게 느껴 보고 존재의 실체를 위해 진실 된 고민을 해 볼 여유를 갖지 못하고 성인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5월 청소년의 달에 어린이로 살아가는 이들이 자신의 존재에 대한 자기 가치를 만끽할 여유조차 갖지 못하고 어버이에 대한 감사와 스승에 대한 존경을 표방하는 사회적 기준의 마련은 사실상 청소년의 달이라는 법적 기준이 무색하게 되는 모습이다.

 

어린이날에서 성년의 날, 부부의 날 등으로 전환되는 기념일의 흐름을 보면서 어린이에서 성인이 되는 과정이 이해는 되지만 정작 청소년이 5월의 핵심주체라 하면서도 이들을 상징적 표현하는 기념비적 청소년의 날은 없기에 아쉬움이 더욱 크다.

 

국가가 특정 날을 기념일(記念日)로 제정한다는 의미는 어떤 특정한 대상 또는 의미를 강조하여 모든 국민이 함께 기념하고자 기리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청소년의 달을 지내는 이들은 어물쩍 청소년이라는 생각을 깊이 있게 하지도 못한 채 성년의 날을 맞이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성년이 된다 함은 연령적으로는 만 19세를 넘어서며 민법상 부모 등 후견인의 보호에서 벗어나 독립적 생활과 함께 법률적 책임도 뒤따르는 수준이 됨을 의미한다.

 

너는 이제부터 어린이에서 어른이 되었으니 생각과 행동규범을 올곧게 하여 행위에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이 정확한 판단은 물론 타인에 모범이 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가치 지향적 선언을 해 주는 전환점의 의미가 강한 시점이다.

 

그러나 청소년의 날이 없는 5월에 드는 아쉬움은 마치 팥소 없는 찐빵과 같은, 뭔가 있기는 하나 가장 중요한 무엇이 빠져 있는 불편함이 거슬린다.

 

우리나라와 같이 유교적 사고가 여전히 큰 잔상(殘像)을 이루고 있는 상태에서 청소년의 달은 청소년이 어떠한 존재인가를 깨닫는 계기를 마련하지 못하고 곧바로 성인의 사회적 책무를 강조하게 되는 모순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그렇다고 청소년의 날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세계 청소년의 날(International Youth Day)’은 UN이 1999년에 120개국 중 54국의 찬성으로 문화·법적 문제에 청소년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하여 8월 12일로 채택하였다.

 

하지만 가장 더울 때, 그것도 5월과 전혀 무관한 시점에서, 우리나라에서도 아닌 UN의 주도하에 제정한 ‘세계청소년의 날’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저 그런 명목상의 날에 불과하다.

 

또 우리의 문화적 지향점과 다른 시점에 채택된 세계청소년의 날은 아는 이도 거의 없을뿐더러 국가적으로도 관심이 없는 말 그대로 사문화된 날이다.

 

그래서 청소년의 달이라는 포괄적 의미도 중요하지만 적어도 이중 하루 만이라도 청소년스스로가 자신의 존재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청소년이후의 세계를 고민하며 지금, 현재의 상황을 토대로 새로운 변곡점(變曲點, point of inflection)을 만들어 보도록 유도하는 기회를 마련해 봄은 어떨까 생각해 본다.

 

5월 한 달을 청소년의 달로 명명함은 마치 많은 사람들이 청소년들의 존재에 누군가는 관심을 갖겠지 느끼지만 실제로 관심이 정체하거나 후퇴하는 단절 현상이 나타나는 캐즘(chasm)현상과도 같다. 

 

청소년의 달을 사는 청소년들은 그들의 존재가 명확하지 않아 여러 세대에 끼여 있는 대상으로 전락하여, 있으나 마나 한 그들만의 리그로 제한되어 무관심한 대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자.

 

물론 이전에도 청소년의 달은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지만 작금의 청소년들이 그들 스스로 삶의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도록 유도해 주는 것은 그만큼 저출산, 고령화시대 우리 사회를 지탱해 주어야 할 든든한 허리가 청소년이기 때문이다.

 

이전보다 더욱 더 심리적 갈등과 소통부재로 고통 받는 이들이 많아진 현 시점에서 과거에는 ‘청소년의 날’의 필요성이 없었다지만 작금의 상황을 재해석해 본다면 청소년들에게 성장지향성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하는 일은 이전보다 더욱 중요해지지 않을까 한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팥소 없는 찐빵과 같이 겉모양만 바라보며 우리는 청소년을 위해 할 일을 다 했다는 식의 판정이 아닌 구체적 변곡점을 만드는 노력에 모두가 동참했으면 한다.

 

/디컬쳐 칼럼니스트 권일남(명지대학교 사회과학대학장/한국청소년활동학회장)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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