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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기]그들 모두가 ‘여자 전태일’이었다

다큐멘터리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

이경헌 기자 | 입력 : 2022/01/06 [22:33]


지난달 청년 전태일을 다룬 애니메이션 <태일이>가 누적 관객 수 11만 명을 기록한 가운데, 오는 13일 ‘여자 전태일’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이 개봉한다.

 

전태일과 동시대에 ‘청계피복노조’에서 일하던, 이른바 ‘공순이’ ‘시다’로 불리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갓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들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미싱사 보조로 일해야 했다.

 

아침에 선풍기를 켜면 몇 시간 만에 선풍기 날개가 까맣게 될 정도로 먼지가 많은 그런 열악한 상황에서 일해야 했다.

 

지금이야 야근을 하거나 주말에 근무하면 돈을 더 주지만, 그 시절엔 그런 것도 없이 한 달에 이틀 쉬면서 기계처럼 일해야 했다.

 

그래도 그들은 돈 벌어서 공부해야지 하는 꿈이 있어 버틸 수 있었다.

 

어느 날, 한 여성 노동자가 ‘모범 근로자’로 상을 받아 육영수 여사를 만날 기회를 얻어 배움의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건의해 ‘새마을노동교실’이라는 이름의 야학이 평화시장 동아상가 옥상에 세워졌다.

 

무료로 중학교 과정을 공부할 수 있다는 전단지를 보고 200명에 달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몰려 들었다.

 

당시 ‘시다’로 일하던 신순애 씨는 일을 시작하고, 노동교실 등록할 때 처음으로 자기 이름을 써 봤다고 한다. 평소 ‘○번 시다’ 등 이름대신 번호로 불리던 까닭이다.

 

하지만 개교식에 함석헌 선생이 참석하자 정부에서 ‘빨갱이’ 프레임을 씌워 그날로 노동교실을 폐쇄해 버렸다.

 

어렵사리 장소를 옮겨 노동교실을 다시 세웠고, 노조의 요구로 밤 10시, 11시에 끝나던 일이 8시에 끝나 2시간여 동안 노동교실에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다.

 

그러나 건물주가 1977년 9월 10일까지 비워달라고 요구해 오자, 목숨보다 귀하게 여기던 노동교실을 지키기 위해 집행부를 제외한 노조원들이 9월 9일 농성을 계획해 실행에 옮겼다.

 

자신들을 인간답게 살 수 있게 해 준 노조와 노동교실을 지키기 위해, 잘못되더라도 노조가 없어지는 것은 막으려고 집행부 모르게 준비한 것이다.

 

노동교실에 못 들어가게 막고 있던 경찰의 눈을 피해 신순애 씨가 올라온 후, 다른 노조원들도 우르르 4층에 위치한 노동교실로 모여들었다.

 

이에 경찰기동대가 투입돼 본격적인 대치가 시작됐다. 노조원들은 사건이 장기화 될 것에 대비해 일단 밤새 물부터 받았다.

 

경찰이 계속 진입을 시도하자 현장에 있던 신광용 씨는 유리를 깨 자기 배를 그으며 극렬히 저항했다.

 

임미경 씨는 “제2의 전태일은 여자가 되어야 한다”며 투신하려고 해 주위에서 말리느라 애를 먹었다고 한다.

 

경찰은 소방차를 동원해 고압의 소방호스를 노조원들에 쏴댔다. 당시 현장에 있던 이들은 물대포를 맞고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문제는 9월 9일이 북한 조선노동당 창설일이라는 점. 이에 정부는 이들을 ‘빨갱이’로 몰았다.

 

그래도 판사는 제대로 된 판단을 해 주리라고 믿었건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방청석에 있던 전태일 열사의 모친 이소산 여사가 이에 판사에게 항의하자 판사는 법정모독죄로 그녀를 구속시켰다.

 

여성 노동자들은 매일 같이 이소산 여사가 갇힌 구치소 담벼락에서 “어머니”를 외치며 응원했다.

 

하지만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북한에서 김일성을 ‘어버이 수령’이라고 부르는데, 이소산 여사를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 보니 이들이 ‘빨갱이’가 분명하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다.

 

조선노동당이 생긴 날짜를 아는 사람이 우리 국민 중 몇 명이나 될까? 이들이 볼 때는 그걸 아는 재판부가 더 수상해 보였다.

 

심지어 재판 전 그녀들이 경찰서 유치장에 있을 때 경찰들끼리 “쟤네가 무슨 간첩이야?”라고 말하기도 했다.

 

경찰서에 있는 동안 면회도, 속옷 등 물품반입도 금지해 12일 동안 속옷을 갈아입지 못한 까닭에 재판 후 교도소로 옮겨진 신순애 씨는 신체검사를 위해 옷 벗으라는 말에 제일 먼저 벗었다고 한다.

 

도저히 가려워서 더 이상 입고 있지 못할 정도였는데 잘 됐다 싶어서였다.

 

심지어 유치장에 있을 땐 화장실도 못 가게 했는데, 교도소에선 화장실도 자유롭게 갈 수 있어서 오히려 더 좋았다고 한다.

 

이에 다른 재소자들이 그녀가 여러 번 교도소에 온 것으로 착각했을 정도라고.

 

임미경 씨는 당시 나이가 어려 소년원에 가야 했지만, 교도소에 보내기 위해 정부에서 그녀의 주민번호를 조작해 교도소에 가뒀다.

 

그래서 세월이 흘러 민주화 운동으로 정부로부터 피해를 입은 이들에게 보상을 해 줄 때, 확인이 안 돼 보상받을 수 없었다고.

 

전태일에 대해서는 다들 관심 있지만, 정작 그 당시 전태일과 함께 일하던 수많은 여성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던 이들에게 적극 추천한다.

 

/디컬쳐 이경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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