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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애프터 썬, 애프터 한국영화

칼럼니스트 김진곤 | 입력 : 2023/05/02 [21:19]

 

영화 <애프터 썬>은 성인이 된 소피가 20여 년 전 어린 시절 아빠와 단둘이 떠난 튀르키예 여행이 담긴 캠코더 영상을 보며 그때를, 그 시절의 아빠와의 마지막 기억을 그린 작품이다.

 

2022년 칸 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되고 전 세계 영화제 131개 부문 후보에 오르며 국내 관객들에게도 잔잔히 입소문을 탄 작품이다.

 

부모의 이혼 후 엄마와 살고 있는 11살 소피(프랭키 코리오 분)는 아빠(폴 메스칼 분)와 단둘이 튀르키예에서 여름방학을 보내기로 한다. 하지만 도착 직후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아주 예쁠 거라던 호텔은 공사가 한창이고 트윈베드룸 대신 보조 침대가 딸린 싱글베드룸에 배정된다. 딸에게 큰 침대를 양보한 아빠는 몸을 뒤척일 수도 없는 작은 보조 침대에서 잠을 청한다.

 

부녀는 호텔 수영장에서 휴식을 취하고 함께 당구를 치거나 디너파티도 즐기며 그런대로 즐거운 휴가를 보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파티 도중 돈을 내야 하는 순간이 오자 소피와 함께 줄행랑을 치는 아빠. 재밌다는 듯 깔깔거리고 웃지만, 소피는 어렴풋이 알고 있다. 아빠의 가난을, 공사 중이라 싸게 묵을 수 있는 호텔, 디너파티를 충분히 즐길 수 없는 아빠의 가벼운 지갑을. 

 

소피는 11살이지만 또래에 비해 조숙했다. 아니, 이혼한 부모를 두고 있어서 스스로 성숙한 척 해야 했는지도 모른다. 

 

같은 또래 여아들과는 놀지 않는다. 소피의 시선은 항상 언니 오빠들에게 맞춰져 있다. 

 

술 마시는 언니 오빠들을 동경의 눈으로 바라보고 귀여운 옷 대신 성숙해 보이는 원피스나 비키니 수영복을 입는다. 

 

아빠의 실수로 늦은 밤까지 호텔 방에 들어가지 못하고 곤경에 빠지고도 쿨하게 용서하는 소피가 사실 ‘아빠만의 고통’을 어렴풋이 알고 있는 성숙한 소녀였다.

 

반면에 아빠의 시선은 오롯이 딸 소피에게 가 있다. 아빠는 소피에게 호신술을 가르쳐주고 소피의 등에 수시로 썬크림을 발라준다. 

 

고대 유적지에서 서로에게 머드 마사지를 해주며 친밀한 스킨십을 나누기도 한다. 

 

또 술을 마시고 남자친구를 사귀는 등 소피가 미래에 겪게 될 일들에 관해 조곤조곤 이야기해준다.

 

그 모든 일상이 그때는 몰랐던 아빠의 유언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하지만 일상 이면에 간혹 기체조를 하거나 이상한 춤을 추며 혼자만의 세계로 빠져드는 아빠, 기분이 좋았다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예민해지거나 우울감에 휩싸이곤 하던 아빠를 소피는 성인이 돼서야 그 모습을 기억한다.

 

영화는 아빠와 소피의 결말을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뜨거운 태양 아래 함께 보낸 그 여름이 소피와 아빠의 마지막 시간이었음을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애프터 썬>에서 중요한 건 서사가 아니라 짧은 쇼트(shot)로 말하는 ‘감정’의 이야기다. 

 

아빠의 모습은 필름 카메라처럼 한 장면 한 장면 플래시(Flash)가 터지듯 찍힌 쇼트로 소피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감독은 클럽에서 춤추는 아빠의 모습을 영화 중간에 여러 번 짧게 삽입한다. 사이키 조명 때문에 한 장 한 장 사진처럼 찍힌 아빠의 표정에는 환희가 아닌 고통의 모습으로 점점 보여진다. 기억해 보니 아빠의 모습이 그랬으리라 느끼고 있는 것이다. 

 

기억이라는 것이 그렇다. 그때의 ‘기억’을 플래시처럼 떠올리며 지금의 ‘감정’이라는 것으로 가공하고 해석하며 그렇게 믿기 때문이다.

 

애프터 한국영화는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 어떤 쇼트로 남을 것인가.

 

한국영화계도 최근 밝고 뜨거운 태양(sun) 아래 있었다. 영화 <기생충>이 칸과 아카데미에서 최고상을 들어 올렸고 전 세계 1위 넷플릭스 드라마를 제작하는 나라가 됐다. 

 

하지만 볕이 밝을수록 그림자는 짙을 수밖에 없다. 수 백억원을 호가하는 몇 개 영화만 투자 제작되면서 작고 다양한 영화를 잃어버렸고, 두 배 가까이 뛰어오른 입장료는 극장이 아닌 컴퓨터 앞에 관객을 몰았다.

 

작년 한 해 동안 손익분기점(BEP)을 넘긴 영화는 한 작품도 없었다. 

 

재고로 쌓여있는(?) 작품만 90여 편에 이른다고 한다. 그로 인해 투자심사가 멈추고 한국영화계 차트는 파란색 기둥만 보일 뿐이다.

 

잘못하면 지금의 모습은 한때 찬란했던 기억으로 영화사에 남을 수도 있다. 

 

극장에 가보면 상영 중인 영화가 많지 않다. 제작된 영화가 적은 게 아니라 몇 개의 작품만 개봉되는 것이다. 

 

관객은 다양한 영화를 볼 기회를 잃었다. 심지어 출연한 배우조차도 자기 영화를 극장이 아닌 온라인에서 찾아봐야 하는 일이 벌어진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스크린에서 볼 때 최적인 방법으로 촬영되고 만들어진다. 

 

극장에서 봐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수익’이라는 변명하에 극장과 배급사가 외면하면서 관객은 다양한 영화를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다.

 

최근 영화관 입장료는 15,000원 정도다. 만원이던 것이 불과 2년 전이다. 코로나19를 겪고 물가가 상승하며 극장, 투자사, 배급사의 손실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국내 관객은 1년 평균 4.5회 극장을 갔지만 최근에는 1회조차 채우기 쉽지 않아 보인다. 

 

어쩔 것인가. 이대로 극장이 망해가고 영화 제작투자를 멈추면 대기업이야 1, 2년은 버티겠지만 중소 영화인들은 그 사이 전부 아사할 것이다. 

 

영화에 따라 극장입장료를 차별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아바타>처럼 수백억 원을 들여 만든 작품이 있는가 하면 몇억으로 만드는 저예산 작품들도 많다. 

 

같은 입장료를 낸다면 관객은 당연히 고가의 상품을 선호하기 마련이다. <아바타>의 입장료가 15,000원이라면, 저예산 영화는 저렴한 입장료(예를 들어 10,000원)를 내게 해야 더 많은 관객이 부담 없이 올 것이고, 이는 매출 증대를 꾀할 수 있다.

  

시리즈물도 극장에서 상영하자. <오징어게임> <지옥> <카지노> <파친코> <수리남> 등 재미있고 흥행요소가 큰 작품들을 시리즈별로 개봉한다면, 지금의 부족한 콘텐츠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며, 나아가 극장가에 활력을 불어넣었으면 좋겠다.

 

영화는 홀드백(Hold Back; 특정 기간 극장상영으로만 가능하게 하는 보호조치) 기간을 법적으로 보장할 필요가 있다. 

 

2022년 부산국제영화제 때 들었던 사례다. 프랑스는 홀드백이 강력하게 유지되고 있어 영화는 일정 시간(수개월)이 지나야 OTT 등에 서비스될 수 있다고 한다. 영화업, 영화인, 예술인을 살려내는 법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IPTV, OTT가 극장과 동시상영, 동시개봉 한다. 이는 영화업의 한 축인 극장을 붕괴시키는 큰 요인이 되고 있다. 

 

지금 한국영화의 얼굴에 환희와 고통이 교차한다. 부디 영화인들의 한숨을 흘려듣지 않았으면 한다. 애프터 한국영화가 마지막 인사인 바이바이가 될까 두렵다. 

 

/디컬쳐 칼럼니스트 김진곤(영화감독)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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