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초연한 연극 <빵야>가 다시 돌아왔다. ‘멀었지만 좋았고, 좋았지만 멀었다’는 관객들의 원성(?) 때문에 이번엔 마곡이 아닌 대학로로 무대를 옮겨 관객의 접근성을 높였다.
‘빵야’라는 단어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총이 주인공이다.
1945년 일제강점기 인천에 위치한 조병창에서 생산된 소총의 역사를 통해 현대사를 조명하는 작품이다.
한물간 드라마 작가 나나가 우연히 드라마 소품창고에서 소총 한 자루를 발견하면서, 이 총에 ‘빵야’라는 이름을 붙여준 후 이 총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의인화해 새로운 대본을 쓴다.
일본군 앞잡이를 시작으로 학도병, 중공군, 팔로군 등 다양한 이들의 손을 거친 빵야가 목격한 우리 현대사를 풀어낸다.
때론 적군을 죽이기도 했지만, 때론 제주 4·3사건 현장에서 무고한 양민을 죽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결국은 이제 촬영 소품으로 전락하게 됐다.
빵야는 원치않는 살인을 저지르면서 괴로워한다. 사실 빵야는 악기가 되고 싶었다.
전쟁 중 여러 쇠붙이와 나무를 모아 총을 만들다 보니 빵야의 방아쇠는 악기 호른의 부품이다.
악기가 돼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싶었지만, 어쩌다보니 총이 돼 사람을 죽이는 신세가 됐다. 그래서 빵야는 괴롭다.
소품 창고 피아노 위에 방치된 빵야는 그래서 어쩌면 지금이 행복할지도 모른다.
나나는 편성을 위해 대본과 트리트먼트를 제작사에 건네고, 제작사 직원들과 방송사 담당 PD는 내용은 좋은데, 스타 배우가 주인공이 아닌 소총이 주인공인 게 걸린다며 그녀의 대본을 난도질한다.
과거 방송사라고 KBS, MBC, SBS, EBS 밖에 없던 시절도 아니고, 200개가 넘는 채널과 넷플릭스, 티빙 등 OTT가 넘쳐나는 시대에 시청자의 선택을 받으려면, 자극적이든지 스타 배우가 출연하든지, 유명한 작가가 집필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펜트하우스>나 <7인의 탈출> 같은 막장 드라마가 판치고, 김은숙 작가나 이병헌은 회당 수억 원의 고료나 출연료를 받는다.
하지만, 나나는 김은숙 작가처럼 유명한 작가도 아니고, 빵야의 이야기가 막장도 아니니, 그렇다면 스타 배우가 나와서 극을 이끌어 가야 하는데 사람도 아닌 소총이 주인공이라니 대본을 제멋대로 뜯어고친다.
영화고 드라마고 소재가 다양해야 한다. 죽고 죽이고, 바람피우고, 어릴 적 버린 아들이 딸과 사귀는 내용만 보다 보면 정신적으로 병든다.
미디어의 영향력이 크기에 시청자들의 사고(思考)가 한쪽으로 치우치게 될 것이고, 그러면 결국 사회가 병들 것이다.
때론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작품도 보고, 때론 가슴 뭉클한 드라마도 봐야 사회가 건강해진다.
그런 측면에서 이 연극은 역사의 어두운 면에 대해 생각할 기회와 더불어, 미디어 홍수 속에 점점 자극적인 소재가 범람하는 현실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제공한다.
두 가지를 모두 잡은, 그게 바로 관객들이 <빵야>에 열광하는 이유다.
연극 <빵야>는 9월 8일까지 대학로 예스24 아트원 1관에서 관객과 만난다.
/디컬쳐 이경헌 기자 <저작권자 ⓒ 디컬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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