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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코이 잉어의 세상살이 적응력과 배움

칼럼니스트 권일남 | 기사입력 2020/06/08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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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코이 잉어의 세상살이 적응력과 배움
기사입력  2020/06/08 [15:34]   칼럼니스트 권일남

일본의 관상물고기중 코이라는 잉어과의 물고기는 참으로 특별하게 환경의 적응력을 보여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세상살이의 단면을 보여준다.

 

무한한 성장잠재력을 가진 코이는 어떠한 환경에 처했는가에 따라서 외관상 몸집의 크기가 엄청나게 달라진다. 작은 어항에 기르면 금붕어 크기의 관상어가 되지만, 수족관이나 큰 연못에서는 어른 손 한 뼘 크기로 자란다. 

 

또 강물과 같이 넓은 곳에서는 최대 120센티미터 정도까지 자란다고 하니 같은 유전자를 가진 물고기가 이렇게 다른 크기로 자랄 수 있다는 점이 너무도 신기하다.

 

인간이 생각하기에 미물(微物)에 불과한 물고기라고 여길지 모르나 적어도 주변의 환경과 상황의 정보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잘 알고 받아들이며 생존의 지침으로 활용하고 있는 코이 잉어를 보고 그냥 지나친다면 뭔가 큰 것을 놓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코이 잉어가 처한 환경과 조건에 능동적으로 대처한다고 스스로 지각한다고 하기 어렵겠지만 상징적 의미와 교훈을 통해서 우리 자녀를 위해 부모는 어떠한 환경을 조성하려 했는지의 성찰이 필요해 보인다.

 

통상적으로 부모는 자녀를 위해 가장 최적의 환경을 조성해 주고 있다는 굳건한 믿음과 신념을 갖고 있음이 오히려 자녀행동판정에 대한 자기부정을 강화하여 올바른 판단을 가로막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반면 가장 최적의 환경을 조성해 주어야 하나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아쉬움으로 탄식하고 있는 부모 역시 많다.

 

하지만 이 모두의 상대적 환경과 상황을 직시하되 전부가 아님을 깨닫지 못하고 최선의 환경을 다해 주지 못한다는 외형에 매몰되고 있지 않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어찌 코이 잉어만 환경에 따른 영향을 받을까? 주변의 환경이나 상황을 극복할 여력을 갖추지 못한 채 상황만 탓하며 자신의 보유 능력을 기대이하로 발현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음을 경험적으로도 알 수 있다.

 

그래서 코이 잉어의 성장에서 얻는 교훈을 청소년들이 자라도록 주변 환경과 삶의 가치를 결정짓는 모습과 겹쳐 본다면 부모는 자녀가 비전과 목표를 성취하도록 하는 가치지향성의 환경이 어항인지, 수족관이나 아님 강물인지의 여부로 되돌아봤으면 한다.

 

대부분의 부모는 자녀에 대한 모두의 기대감으로 강물과 같은 큰 비전과 소망, 포부를 실현해 주기를 바라고 있을 터이지만 그만큼 큰 환경과 조건으로 서로의 합리적 공감이 설정되어 있는지를 세심하게 살펴봐야 한다.

 

자녀를 위한 환경의 제공이 물리적 조건에 치우치고 있는지, 자상하고 이해에 기반한 소통의 관계인지, 과도한 압력과 지시에 의한 결과중심적 자세가 중요한지를 하나하나 자신에게 물어보며 지금 자녀와 몸으로, 마음으로 표현의 진솔한 의미를 이해하는 상태인지 해답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부모들은 자녀의 성장에 대한 일정한 기준이 명확하다는 착각이 많고 그 기준은 사회적으로 열등함이 아닌 우월함을 기반으로 하며 반드시 지켜야만 성공이라는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즉 내가 물리적 타당성, 사회적 자본성,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통한 기대감 등으로 점철되어 있다면 자녀들은 부모의 통제와 가시적 거리 속에서 자신을 빛내 줄 대상이 불과하며 숨죽이며 작은 어항속의 물고기가 될 수밖에 없다.

 

환경과 상황이 우리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줄지 재삼 고민해 보면서 자녀를 위한 마음의 기준으로 어항보다 큰 강물을 만들기 위한 방법을 찾는다면 코이 잉어를 통해 몇 가지 교훈을 얻어 보자.

 

첫째로, 자녀를 위해서 행하는 사커맘(soccer mom), 헬리콥터 부모(Helicopter parent), 엄친아 등을 당연시 여기는 탐욕은 없는지 그래서 혹 우리 자녀가 피터팬 증후군(Peter Pan syndrome)으로 어른아이(kidult)일 가능성은 없는지 조금은 먼발치에 서서 바라보자. 만약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변화시켜 보자.

 

둘째는 부모는 자녀가 성장하는데 적절한 환경과 여건을 재설정해 보고 그 기준이나 환경이 자녀가 아닌 나를 위한 트로피에 매몰되었는지 판단하여 기준을 재구성하는 고민을 해야 한다. 

 

자신의 눈높이에 맞는 학습, 학원, 교육, 행위 등을 권함이 일상화되어 자녀와 다른 충돌이나 갈등이 보편적이라면 이는 강물을 오히려 어항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는 자녀가 주어진 환경을 스스로 극복하는데 다소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직시하고 몸짓과 발버둥을 이해해 주는 시도를 해야 한다. 나와 자녀가 얼마나 서로의 이해를 바탕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자녀가 바라는 점을 수용할 유연성이 있는 부모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부모가 자신을 위한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면 자녀는 탈피의 발버둥과 속박의 굴레라는 양면적 상황에 매몰되게 될 것이다. 

 

자녀가 바라보는 부모가 격려와 지지가 미비하고 숨 막히는 두터운 작은 어항이라고 여긴다면 순응이나 거부의 무력감으로 몸집을 키우지 못한 작은 물고기가 되어 다른 물고기의 먹잇감이 되어버림과 같다는 점에서 부모가 무엇을 고민해야 할지 깊이 있는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청소년문제행동은 이런 과정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디컬쳐 칼럼니스트 권일남(명지대학교 사회과학대학장/한국청소년활동학회장)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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