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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조디 포스터가 주는 ‘기묘한 안도감’

영화 <파리의 사생활>

칼럼니스트 김진곤 | 기사입력 2026/07/02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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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조디 포스터가 주는 ‘기묘한 안도감’
영화 <파리의 사생활>
기사입력  2026/07/02 [11:29]   칼럼니스트 김진곤

 


정신과 의사인 릴리안(조디 포스터 분)을 집어삼킬 듯 밀려드는 무의식의 공포. 자신의 환자를 죽음으로 몰았다는 남편의 비난, 그가 살인자일지 모른다는 의혹, 그리고 끝내 자신의 정체성마저 흔들리는 균열. 

 

영화는 관객이 이 이야기가 어디까지 나아갈지 짐작할 수 없게 만든다. 한바탕 소동으로 휘휘 저어진 뒤 가라앉을 즈음에, 영화가 남기는 것은 의외로 긴장이 아니라, 설명하기 어려운 기묘한 안도감이다.

 

영화의 첫 장면에 나오는 음악, 데이비드 번(David Byrne) 특유의 신경질적이면서도 읊조리는 듯한 보컬과 베이스라인이 돋보이는 이 노래는 <사이코 킬러>(Psycho Killer)이다. 미국의 전설적인 록 밴드 토킹헤즈(Talking Heads)의 데뷔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이 곡을 영화의 오프닝과 소동의 서막에 배치하면서 이 영화는 킬러가 나오며, 흥미롭고 유쾌하게 풀어낼 거야라고 선언하듯 배치하였다.

 

아니다 다를까, 릴리안은 자신의 감정과 진료실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싶어 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위층에서 쿵쾅거리며 들려오는 이 거칠고 신경질적인 펑크 뉴웨이브 음악은 그가 견딜 수 없는 스트레스임을 보여준다. 

 


그녀가 위층 청년에게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하지만 이내 거절당한다. 릴리안이 위층으로 올라갈 때 스파이럴 계단을 보여준다. 빙글빙글 말려 올라가는 계단을 따라 현실에서 불안의 중심으로 빨려 들어가는 이 장면은 자연스럽게 히치콕의 영화 <현기증>를 연상시킨다. 

 

위층의 소음은 단순한 생활 소음이 아니라, 그녀가 통제할 수 없는 세계와 사생활(Vie privée)의 균열을 알리는 첫 신호로 알려주고 있다. 

 

영화 <파리의 사생활>의 원제목은 프랑스어로 <비 프리베>(Vie privée)이다. 영어로는 프라이버시(Privacy)이고, 직역하면 ‘사생활’이다. 그러나 국내 제목이 <파리의 사생활>이다보니, 관객은 완전히 다른 영화를 기대하고 극장에 들어설 수 있다. 

 

가령, 낭만적이고 화려한 프랑스식 로맨스나 치정극처럼 말이다. 하지만, 영화는 첫 장면에서 토킹헤즈의 <사이코 킬러>를 들려주며 그런 기대를 단호하게 배반한다. 감독(레베카 즐로토프스키)은 파리라는 도시보다 인물의 내면으로 관객을 끌어들이며 한 사건을 들이민다. 

 

한 여인의 죽음. 자살이라고 말하지만, 살인일 수 있다. 영화는 이미 <사이코 킬러>를 들려주며 관객이 모든 인물을 의심하도록 교묘하게 유도해 놓는다.

 

영화는 폴라(비르지니 에피라 분)를 처음부터 죽은 시체로 등장시킨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그녀는 폴 버호벤감독의 2021년 작 <베네데타>일 것이다. 

 

신비롭고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주었던 배우는 이번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모든 사건의 출발점이 된다. 그녀는 자살한 것일까, 살해된 것일까. 그녀의 남편은 상담의였던 릴리안 때문에 죽었다며 분노한다. 

 

하지만 릴리안이 그 문제에 접근할수록 그녀의 남편(마티유 아말릭 분)이 살해했을 거라는 정황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녀의 남편은 사이코 킬러일 것이다. 관객은 그녀의 남편이 살인자일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반전을 제시할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감독은 반전에 집중하기보다 그것을 풀어가는 방법에 시선을 돌리게 한다. 그 방법이라는 것이 릴리안의 최면 상태에 본 전생의 이야기라니.

 

이 영화는 환상과 판타지, 의식과 무의식을 나누고 거대한 빙산으로 이끈다. 최면술사는 릴리안에게 최면술을 설명하며 프로이드를 언급하기도 한다. 

 

영화 <비 프리베> 아니 <파리의 사생활>은 심리학자 주인공이 이성이 무의식의 습격을 받을 때, 인간은 자신이 통제권을 잃어버리고 극심한 불안과 비이성적인 행동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인간은 바다 위에 겨우 일부분만 드러낸 빙산과 같다고 했다. 타인에게 보여주고 심지어 스스로도 인지하는 ‘나’는 수면 위의 의식일 뿐이며, 거대하고 통제 불가능한 ‘진짜 나’는 수면 아래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다. 

 

또 다른 상상을 하게 만든다. 라캉이 말한 것처럼 그럼 영화가 마치 ‘거울 속의 이미지가 나인양 착각하다가 타인의 욕망과 시선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가짜 이미지를 보여주려는 것일까, 그런 철학적 담론을 끌어들이는 영화일까, 라는 생각을 할 때 즈음이면 감독은 우리가 그런 편견에 사로잡힐 것이라는 것을 의도라도 한 것처럼, 코미디 추리극 같은 어설픈 탐정놀이를 시작한다. 

 

감독은 마치 관객의 몸을 부여잡고 좌로 우로, 엎치락뒤치락하게 만드는 것이 이 영화의 매력이다.

 

각본의 텍스트만 보면 궤도를 이탈한 엉뚱한 전개 같지만, 흥미로운 것은 영화가 끝내 사건의 진실보다 그 황당한 상황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끝내 무너지지 않으려 버티는 나이든 심리학자이며, 엄마이며, 한 남자의 아내였던 릴리안이라는 사람에게 더 오래 머물게 한다는 것이다.

 

누가 죽였는가보다 중요한 것은 모든 확신을 잃어버린 사람이 어떻게 다시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오는가이다. 그녀의 이유 없이 흐르는 눈물을 기억하면 플롯의 개연성이 아닌 영화의 감각적 감흥이 남는다. 

 

죽음이라는 인류가 해결하지 못하는 커다란 사건 앞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소동극. 호불호는 분명 갈릴 것이다. 그럼에도 마지막 장면에서 릴리안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때 남는 것은 조디 포스터가 연기 해낸 끝내 무너지지 않는 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영화는 결말에 대한 허무함이 아니라, 일상으로 복귀한 마지막 장면에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기묘한 안도감을 남긴다.

 

/디컬쳐 칼럼니스트 김진곤(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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